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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울 꼭 가볼만하곳, 성북동 길상사 꽃무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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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날짜: 2020년 9월 25일

길상사는 많은 사연이 있는 절인것 같다. 우리한테 많이 알려진 법정스님이 계셨던 곳이고 길상사가 지금의 모습으로 있기까지의 역사가 모든걸 말해준다. 지금의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고급요정이 있던 자리였는데 여기 주인인 김영한이라는 분이 시주하여 탄생하게 되었다. 

 

길상사 꽃무릇

 

주차

길상사의 뒤쪽에 주차장이 있지만 여유가 많지 않아 대중 교통을 이용 추천.

대중 교통

주차장이 좁아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이용해서 많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길상사 버스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어서 사람들이 거기서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북-02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될것 같다.

 

길상사앞에 버스정류장

입장료

없음

화장실

들어오자 마자 오른쪽에 있다.

 

길상사 비하인드 스토리

 

김영한은 1916년 일제 암흑기에 태어나 16세의 나이로 뜻한 바 있어 기생으로 입문하였다. 천재 시인 백석과 만나 서로 사랑을 하게 되지만 백석의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은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시인 백석은 남북한과 만주지역에서 활동을 하다가 한국전쟁 발발후 시인 백석은 북한에서 김영한을 남한에서 떨어져 지내게 된다. 1953년 김영한은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55년에 당시 성북동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란 한식당을 운영하게 된다.  198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7천여 평의 대원각 터와 40여 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 주길 간청하였으나 처음엔 거절하였다. 10년동안 끈질기게 부탁하였고 1995년에 받아들여져 지금의 길상사가 되었다. 지금의 길상사의 건물들은 그 당시의 있던 건물을 조금만 고쳐서 그대로 쓰고 있다. 김영한은 법정스님으로부터 불명으로 길상화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나중에 그 이름이 지금의 절의 이름을 이르게 했다.  김영한의 유언에서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절의 뜰에 뿌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1999년에 고인이 되었다. 시인 백석이 남긴 시 중에 '나와 나타샤와 힌 당나귀'라는 시가 있는데 내용을 보면 눈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유언에 눈 내리는 날에 뿌려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시에서 나타샤는 김영한을 나타나는것이고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잘 나타나는 지 알수 있게 하는 시이다. 이 시는 길상사안에 김영한 공덕비 옆에 세겨져 있다. 시는 다음과 같다.(참조- 마가리: 오드막집, 출출이: 뱁새, 고조곤히: 소리없이, 조용히의 방언)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날인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이고

나는 혼다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힌당나귀 타고

산곬로 가쟈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곬로가 마가리에 살쟈

 

눈은 푹푹 날이고

나는 나타샤을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벌서 내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

산곬로 가는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같은건 덜어워 벌이는것이다

 

눈은 푹푹 날이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힌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것이다

 

김영한이 그녀의 전재산을 시주할때 그 당시 인터뷰한 기자가 그 재산이 아깝지 않냐고 물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1천억원의 재산이 시 한줄 보다 못하다".

 

길상사 입구
길상사 극락전
길상사 극락전 옆에 있는 석불
1층과 2층은 원래 카페로 이용하고 있었지만 코로라 팬데믹으로 지금은 휴업중이다. 3층은 불교신자를 위한 곳으로 쓰인다.
3층에서 내려다 본 연뭇과 석탑.

 

길상사 7층보탑은 조선 중기(1600~1650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기독교인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님이 법정스님과 길상화보살(김영한의 불명)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종교화합의 의미로 무상으로 기증하였다. 

길상사 7층보탑

관음보살 석상은 천주교 신자이자 가톨릭 예술가인 최종태가 건립한 것으로 혜화동 성당에 건립한 성모 마리아 석상과도 닮았다고 한다. 종교가 다름에도 길상사에 곳곳에 종교 화합을 담은 석상이 놓여져 있어 다른 절과는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마도 법정스님의 영향이 미쳐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관음보살 석상

 

 

길상사 범종각
스님 숙소

진영각은 법정스님의 유품과 초상화가 있는 곳이고 진영각 밖에는 유골을 모신 곳이 있다. 내부는 신발을 벗고 구경을 할수 있지만 사진 촬영은 금지로 되어 있다. 법정스님이 입으셨던 옷을 보니까 어떤 분이셨지 금방 한눈에 알것 같았다.

진영각 앞의 꽃무릇
법정스님 유골을 모신 곳
길상사 길상화 보살상
계곡에 있는  길상사 길상화 보살상
귀여운 동자인형. 
시주 길상화(김영한의 불명) 공덕비

길상사의 꽃무릇

길상사에는 꽃무릇이 절안에 여기 저기에 피어있다. 꽃무릇은 상사화라고도 하는데 이유는 꽃과 잎사귀가 한꺼번에 나지 않기 때문에 한번도 만나적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어 진다고 한다. 꽃의 자태는 무한히 화려해보이는데 한편으로는 애달픈 꽃인것 같은 이유는 이 곳을 시주한 사람의 사연때문인지 않을까 생각했다.

 

입구쪽의 꽃무릇
진영각으로 가는 길 옆에 피어있는 꽃무릇
길상사 꽃무릇밭
길상사 꽃무릇
진양각방향에서 내려다 보이는 꽃무릇과 스님 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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